그룹 창립 60주년기념 역사사진전
Home사이버홍보실대상50년사
 

발효조미료 ‘미원’은 1970년 10월 2일 네덜란드에서 열린 ‘제9회 세계식품콘테스트’ 통조림 부문에서 당당히 1등으로 선정되어, 그 품질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검증 받았다. 이는 미원의 엄격한 품질관리기준을 여실히 보여준 것으로, 세계적으로 품질을 공인 받아 국내 소비 증대는 물론 급격한 해외수출 신장에 기여했다. 이러한 성장을 토대로 회사는 1972년 국내 최초로 인도네시아에 조미료 생산 해외플랜트를 수출, PT. MIWON INDONESIA를 설립했다.

1973년에는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통해 인도네시아에 먼저 진출한 일본 아지노모토와 중국 사사를 누르고 조미료 시장의 40% 이상을 점유, 업계 1위로 올라서며 세계 최대 조미료 업체로 성장하는 기반을 구축했다.

1970년 5월 21일에는 (주)미원이 본격적인 주식 상장을 실시했다. 1971년에는 상호통상(주)를 설립하고, 1972년 한남공업사, 백광약품을 인수하여 석유화학 등의 분야로 업종을 넓혔다. 또 1973년 5월 (주)미원이 배합사료 공장을 준공, 생산을 개시하는 등 비식품사업분야로 과감히 사업영역을 확대했으며, 1976년 1월에는 미원 김포(가양동) 전분당공장을 준공하여 식량증산과 외화절약에 큰 역할을 담당했다. 1979년 8월에는 미국 3대 식품업체의 하나인 C.P.C 인터내쇼날사와 합작으로 한국크노르(주)를 설립하여 인스턴트 식품을 생산하며 식품사업영역의 다각화를 꾀했다. 80년 3월에는 미원 중앙연구소를 설립하여 그룹의 R&D투자를 본격적으로 시작했으며, 1981년 3월 내쇼날합성(주)를, 7월 미원 H.K를 설립하고, 6월에는 미원 뉴욕지사를 설립하며 해외진출을 본격화했다. 1984년 9월에는 대상팜스코 농장 부문의 전신인 제일농장을 인수하여 축산업에 진출했고,11월에는 정주 사료공장을 준공하여 지역 축산발전에 기여했다.

85년 12월 이천공장에 국내 최초로 축산과학연구실을 설립해 사양기술개발 및 서비스에 주력하기 시작했다. 86년 8월에는 서울미원(주)를 (주)미원으로, 미원(주)를 미원식품(주)로 상호 변경하고 같은 해 11월에는 군산공장 핵산 생산설비를 준공하는 등 사업 영역 확대와 기술력 증진을 도모했다.

1977년 12월, 미원이 독자적인 기술로 15억 원의 연구비를 투입하여 국내 최초로 개발한 핵산계조미료, ‘복합미원’은 종래의 MSG보다 맛과 질에서 고급화를 이루었다. 이로 인해 주제품이던 글루타민산 소다 부문의 정체에서 탈피하여 사업성을 제고할 수 있었다. 한편 80년대 초반 국민들의 생활수준 향상에 따라 더 간편하고 맛이 다양한 조미료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가 늘자, 1982년 10월부터 종합조미료 ‘미원쇠고기 맛나’를 판매하여 맛나 돌풍이 전국을 강타했다.

이 열기를 계속 이어가 1985년 3월 20일 미원과 맛나가 86아시안·88올림픽 게임 지정 조미료로 선정, 국내 최대 식품회사의 위상을 세계에 떨쳤다. 4월에는 국내 최초로 맛나유통대학을 설립하고 유통근대화를 위해 전문유통인 양성에 앞장섰으며, 6월에는 서울지역 맛나 판매량이 월 600톤을 돌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